밀레토스: 이성의 요람이자 철학이 탄생한 도시
유구한 서양 철학사의 첫 장을 장식하는 밀레토스 학파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신화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이성의 빛으로 세계를 바라본 선구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6세기에 번영한 도시 밀레토스에서 활동한 이들은 “아르케(arche)” 즉 만물의 근원을 탐구했습니다. 이는 과학적 사고라는 인류의 독창적인 정신적 유산을 만들어가는 초석을 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철학의 출발점에 선 그들의 사유를 살펴보고 현대적 관점에서도 평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원전 6세기, 아나톨리아 반도(지금의 튀르키예 지역) 서부 해안가에 위치한 밀레토스(그리스어: Μίλητος)는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이 도시가 최초의 철학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선 밀레토스는 지리적으로 동방 문명과 서방 문명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했습니다. 페니키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교차하는 위치에서 페르시아,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고대 문명들과의 활발한 교역은 항해술, 천문학, 측량법 등과 같은 실용적 지식을 축적할 수 있게 하였고 그에 따르는 다양한 문화의 유입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새로운 상대주의적 시각 등 다양한 사고방식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집트의 태양신 라(Ra)와 메소포타미아의 태양신 샤마시(Shamash)에 대한 다른 해석은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의문을 낳았습니다.
또한 올리브 오일, 포도주 무역으로 번영한 밀레토스의 경제적 번영은 시민들, 특히 지식인들에게 충분한 여가 시간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여유는 실용적 필요를 넘어선 순수한 지적 탐구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배가 불러야 문화도 융성하는 법이니까요. 더불어 밀레토스는 당시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항구 도시 중 하나로, 다양한 문화와 사상이 자유롭게 교류되는 열린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전통적 신화나 종교적 설명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신화(Mythos)에서 로고스(Logos)로의 전환을 들 수 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자연 현상에 대해 “신들의 변덕”으로 설명하곤 했지요. 이에 반해 밀레토스인들은 합리적 인과관계를 추구했습니다. 어떠한 자연 현상의 배후에는 그것을 일으킨 과학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레는 제우스의 분노가 아니라 구름의 마찰”이라는 식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초기 과학적 방법론의 출현을 의미했습니다. 그럼 밀레토스에서 활약한 주요 철학자들을 알아보겠습니다.
탈레스: 최초의 철학자이자 과학자
탈레스(Thales, 기원전 624-546년경)는 서양 철학사에서 최초의 철학자로 기록됩니다. 그가 ‘최초의 철학자’로 불리는 이유는 자연현상을 신들의 의지나 신화적 설명이 아닌, 자연 자체의 원리로 설명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주장은 “물이 만물의 근원(arche)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혁명적인 사고의 전환이 담겨 있습니다.
만물의 근원을 물로 본 탈레스에 얽힌 재미 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탈레스가 어느 날 별을 쳐다보며 걷다가 우물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 모습을 본 트라키아 출신 늙은 하녀가 그를 비웃으며 놀렸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을 열심히 보더니 정작 자기 발 앞에 있는 것은 보지 못하는군.” 철학자가 현실과 동떨어진 존재라는 편견을 반영한 일화지만, 그들의 철학이 현실에 기반하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탈레스가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본 것은 여러 관찰과 추론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초월적인 설명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연 현상을 물질적인 원인으로 환원했습니다. 그는 모든 생명체가 수분을 필요로 하며, 물이 증발하여 공기가 되고 다시 응결하여 물이 되는 순환 과정을 관찰했습니다. 또한 그는 땅이 물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지진이 땅 밑의 물의 움직임 때문에 발생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설명은 비록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틀린 것이지만, 자연현상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탈레스는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기원전 585년의 일식을 예측했다고 전해지며, 피라미드의 높이를 그림자의 길이로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또한 자석의 성질과 정전기 현상도 연구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그의 활동은 철학적 사변과 실증적 관찰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 추상적 사고의 시작
탈레스의 제자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기원전 610-546년경)는 스승의 사상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특정 물질(물)을 원소로 삼으면 대립물(물과 불)의 공존을 설명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만물의 근원을 물과 같은 구체적인 물질이 아닌, ‘아페이론(aperion, 무한정자)’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아페이론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하고 무규정적인 것으로, 모든 구체적인 사물들이 이로부터 생성되고 다시 이로 돌아간다고 보았습니다. 즉 구체적인 것들은 규정된 것(peras)들로 물, 불, 흙, 공기와 같은 눈에 보이는 물질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의 근원을 따져보면 아직 무엇으로 규정되지 않은 것(aperion)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은 서양 철학사에서 최초의 추상적 형이상학 체계로 평가됩니다. 그는 우주의 근원을 더 이상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순수하게 사유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후대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또한 최초의 우주론과 생물 진화론적 사고도 제시했습니다. 그는 우주가 원통 모양이며 지구는 그 중심에 떠 있다고 보았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생명 발생 이론입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육상 생물이 물속에서 태어난 물고기 같은 생물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현대 진화론을 예견하는 듯한 통찰이었습니다.
아낙시메네스: 체계적 자연철학의 완성
밀레토스 학파의 마지막 철학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5-528년경)는 앞선 두 철학자의 사상을 종합하고 체계화하려 했습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공기’로 보았는데, 이는 탈레스처럼 눈에 보이는 구체적 물질을 근원으로 삼되,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성 개념을 반영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무한히 퍼져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이 살아 있다는 건 숨을 쉬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로 생명의 원천이 되는 숨이 공기로 되어 있다는 점도 그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응축과 희박화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해 다른 물질들의 생성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공기가 응축되면 구름이 되고, 더 응축되면 물이 되며, 더욱 응축되면 흙과 돌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반대로 공기가 희박해지면 불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자연현상의 변화를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설명하려 한 최초의 체계적 시도였습니다. 또한 그의 “공기” 개념은 후대 철학자 아낙사고라스의 “누스(nous, 정신)” 사상으로 발전하는 연결고리가 됩니다.
이처럼 밀레토스 학파는 신화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서양 철학과 과학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특히 ‘관찰에서 가설 수립으로 그리고 검증으로’ 나아가는 ‘질문하는 방식’은 그들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고 하겠습니다. 탈레스의 일식 예측이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지도 제작은 관측 데이터의 축적과 패턴 분석, 실증적 조사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설명이 비록 현대적 관점에서 틀린 것일지라도, 그 방법론과 문제의식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합니다. 특히 근원적인 것에 대한 탐구, 경험과 이성의 조화, 자연의 통일적 설명 추구라는 측면은 현대 과학의 기본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밀레토스 학파의 빛과 그림자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에서 밀레토스 학파를 물질적 원인론의 창시자로 평가했습니다. 근대 과학혁명의 정신적 조상인 갈릴레오의 “자연은 수학적 언어로 쓰였다”는 선언은 피타고라스보다는 밀레토스 학파에 더 가깝습니다. 그들은 비록 정답을 알지 못했지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법을 알았습니다.
복잡한 현상을 단순한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과학적 환원주의의 시초였습니다. “왜 바다는 짜고 강물은 밋밋한가?” 같은 질문은 현상 너머의 보편적 원리를 찾는 태도를 반영합니다. 또 아낙시메네스의 ‘공기 밀도 이론’은 자연을 기계적 시스템으로 보는 관점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우주를 대칭적 균형으로 이해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생각은 현대 물리학의 통일장 이론과도 정신적으로 닮았습니다.
마치며
밀레토스 학파는 철학을 ‘신화의 대안’이 아니라 ‘삶의 도구’로 만든 장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정답인지 아닌지를 떠나 “질문하는 방법”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물음은 양자역학의 초끈이론과 같은 고도의 현대 물리학에서도 여전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현대 물리학이나 사상이 봉착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시선을 과거로 돌릴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우리가 시대를 거슬러 고대 철학의 사유를 음미해 보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요?
철학의 역사는 늘 새로운 시작의 되먹임 고리 안에 있습니다.
2,600년 전 밀레토스의 사상가들이 던진 작은 돌맹이가 일으킨 잔잔한 파문이
오늘날 우리의 사유를 일으키는 파도가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