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이 말은 오늘 다룰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한 유명한 말로,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와 흐름을 상징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가 보는 강물은 계속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한 번 발을 담그면 내가 담갔던 물은 이미 흘러가 버리고, 두 번째 발을 담갔을 때 만나는 물은 이전에 담갔던 물과는 다른 물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관점을 바꿔 보면 강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듯합니다. 이전에 들어왔던 발이 ‘그의 발’이라면 나중에 들어온 발도 ‘그의 발’일까요? 그 사이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까요? 또한 두 발이 동일하다는 증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헤라클레이토스의 짧지만 강한 이 한 문장이 주는 의미는 참 다양해서 많은 사람들이 즐겨 인용하는 경구이기도 합니다. 가령 “한 번 흘러가 버린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고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소중하게 생각하라”라는 식입니다.
어둠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생애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BC 535-475)는 이오니아 지방의 에페소스(Ephesus, 에베소)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번째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밀레토스와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간혹 사상적으로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밀레토스 학파의 과학적 전통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학사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입니다. 귀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자발적으로 종교 상의 높은 공직을 포기하고 철학적 사색에 전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성격은 매우 고고하고 거만했다고 하며, 이러한 성향 때문에 ‘어둠의 철학자(Ho Skoteinos)’ 또는 ‘우는 철학자’라는 다소 음침한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상은 그가 태어난 그리스 식민지 에페소스의 혼란스러운 정세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에페소스는 항구도시로 번영했는데 페르시아 제국과 그리스 본토 사이에서 정치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또한 아르테미스 신전(Temple of Artemis)을 중심으로 한 종교적 전통과 이오니아의 과학적 합리주의가 충돌하는 장이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시 에페소스 시민들의 무지와 타락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결국 인간을 멀리하고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철학적 사색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이 어둠의 철학자는 거의 ‘모두까기 인형’ 급으로 남을 경멸하거나 기존의 사상가들을 혹평하고 매도하는 일을 일삼았습니다. 인간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불신을 바탕으로 독설을 멈추지 않았는데, 운 좋게 그의 비판을 피해 간 선대 사상가는 테우타모스 단 한 명뿐이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인간을 악하다는 관점으로 설명했기 때문에 그나마 훨씬 나은 설명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비난들, 이를테면 호메로스는 선대 사상가의 명단에서 제외하고 호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거나, 만물에 대해 안다고 해서 이치를 깨닫게 되는 건 아니라거나, 피타고라스는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다 여겼으나 그저 익살을 부리는 기술자에 불과하다거나……, 그 외에 헤시오도스, 크세노파네스 헤카타이오스 등 당대의 모든 사상가들이 그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만물에 공통된 것이고 투쟁이 정의의며, 만물은 투쟁을 통해서 생성되고 소멸됨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등 조화로운 평화(오히려 모든 것이 사라짐)보다는 역동적인 대립과 전쟁이 세상을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무지한 다수의 폭정’이라 비판하며 엘리트주의를 고수했습니다.
당시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엘리트주의가 실패했을 때 발생하는 ‘중우정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는 플라톤의 정치사상과도 연결해 볼 지점이 있겠습니다. 아울러 그의 주요 저서인 『자연에 관하여(Peri Physeos)』는 난해한 문체로 유명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이해하기 어렵게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는 고도의 상징체계로서 해석학(解釋學, Hermeneutics)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대의 종교 역시 매우 거칠게 비판했는데 이는 그가 과학적 합리주의의 입장을 견지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자신만의 종교를 믿으면서 자기 방식대로 해석했다고 보는 편이 낫겠습니다. 예컨대 사람들 사이에 퍼진 종교활동인 비밀 의식(mysteries)을 신성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거나 또 그 종교를 따르는 민중들은 자신이 모시는 신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신상에 기도한다면서 무시하고 깎아내리기도 합니다.
파르메니데스와의 대척점, 변화의 철학
사실 당시 사상가들이 대부분 이렇게 자기 주장을 펼치기 보다는 타인의 사상을 논박하고 모순을 찾아내는 걸 즐겼다는 건 알려져 있지만, 헤라클레이토스만큼 격렬했던 사람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철학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다루면서 존재(Being)과 생성(Becoming)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서문에서 말했듯이,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시한 핵심 명제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만물은 흐른다” 즉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파르메니데스로 대표되는 엘레아 학파와는 완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즉 엘레아 학파가 변치 않는 일자(一者), 존재(Being)에 중심을 두었다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생성(Becoming)에 중심을 둔 것입니다. 현상 세계의 모든 것은 연속적 변화 상태에 있으며, 불변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사상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런 질서도 없이 그저 흐르고 변화하기만 하는 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바로 여기서 그의 ‘로고스’에 대한 견해가 나옵니다.
로고스(Logos)와 우주의 질서
헤라클레이토스의 형이상학은 사실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의 사상이 가지는 역동성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최대한 단순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의 핵심 개념은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는 우주의 근본 원리이자 만물을 지배하는 이성적 질서를 의미합니다.
그는 표면적 변화 아래 불변의 질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의 로고스는 인간의 이성(Reason)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을 초월한 우주 자체의 합리적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 로고스가 영원히 존재하며, 모든 것이 이 법칙에 따라 생성되고 변화한다고 보았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또한 우주의 근원적 요소(arche)로 ‘불(Pyr)’을 제시했습니다. 그에게 불은 눈에 보이는 불 그 자체를 가리키기보다는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유지하는 로고스의 은유적 표현이었습니다. 그는 우주가 불의 변화 과정을 통해 운행된다고 보았으며, 신이든 인간이든 어느 누구도 창조하지 않았지만 세계는 일찍이 불이었으며, 법칙에 따라 타고 꺼지기를 반복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불의 신학은 현대 물리학의 에너지와도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과학적 환원주의를 거부함으로서 밀레토스 학파와도 대립하였는데 이를 “만물은 일자에서 비롯되고, 일자는 만물에서 비롯된다”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대립의 조화와 통일
이렇게 만물이 끊임없는 흐름 속에 있다는 생각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더 중요시한 것이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대립물의 혼합’에 대한 강조입니다. 그는 세계의 모든 것이 대립(Enantiodromia)을 통해 존재하며, 이러한 대립이 우주의 조화를 이룬다고 보았습니다. 즉 대립물이 조화를 이루는 까닭은 바로 투쟁 속에서 운동하는 가운데 결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피타고라스가 수(數)의 하모니 속에서 조화를 이룬 정적 통일론을 펼쳤다면, 헤라클레이토스는 대립물 사이의 투쟁 속에서 조화를 찾는 아주 다이내믹한 동적 통일론을 펼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은 얼핏 모순되는 것 같으면서 묘한 통일성을 지향하는 경구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물은 불 속의 불꽃처럼 다른 존재가 죽어야 태어난다.” “한 존재는 다른 존재가 죽음으로써 살고 다른 존재를 살림으로써 죽는다.” “쌍을 이루는 사물은 온전하면서 온전하지 않고, 함께 모이면서 떨어지며, 조화로우면서 조화되지 않는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상처를 입힌다.” “선과 악은 하나이다.” “신은 낮이자 밤이며, 겨울이자 여름이며, 전쟁이자 평화이며, 배부름이자 굶주림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똑같은 길이다.”
그의 단편들 중에는 “전쟁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만물의 왕이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전쟁(Polemos)’은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우주 내의 모든 대립과 긴장관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대립을 통해 우주의 질서가 유지되며, 이것이 바로 로고스의 작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에게서 모순은 오류가 아니라 우주의 심장 박동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인식론과 윤리학 그리고 결론
헤라클레이토스의 인식론(Epistemology)은 매우 독특합니다. 그는 감각적 인식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앎은 로고스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눈과 귀는 영혼이 야만적일 때는 나쁜 증인이 된다”라는 그의 말은 감각적 경험의 한계를 지적한 것입니다. 재미있는 건 나중에 볼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례에서와 같이 불을 만물의 근원으로 본 그의 우주론은 윤리론으로도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과 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의 불로만 이루어진 영혼은 마르고 밝아서 가장 지혜롭고 선하다. 반대로 영혼이 물로 변하면 죽게 된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영혼이 젖으면 쾌락을 느낀다.” “인간은 욕망하는 바가 무엇이든 영혼의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이러한 사고를 바탕으로 헤라클레이토스는 개인의 영혼이 로고스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최고의 덕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성격이 곧 인간의 운명(Ethos anthropoi daimon)”이라고 말하며, 개인의 도덕적 성숙이 우주적 질서와의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역동적인 그의 생성(Becoming)의 철학은 엘레아 학파로 대표되는 존재(Being)의 철학 즉 분석하고 환원시켜 탐구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밀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지만, 후대에 스토아학파(Stoicism)가 로고스를 우주적 이성으로 재해석하는 토대를 제공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철학에서도 변증법적 사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헤겔(Hegel)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적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으며, 니체(Nietzsche) 역시 그의 사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른바 변화의 보편성에 관한 그의 사상은 오늘날까지도 철학적 사고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있으며, 현대 물리학의 발견들과도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을 꿈꿉니다. 이는 어쩌면 유한한 인생에 대한 도피처일 수도 있고,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누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외일 수 없는 세속적인 삶이 주는 아쉬움에 대한 위안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변하지만 변치 않는 것이 있다는 믿음, 사라진 것 같지만 사라지지 않았다는 신념, 덧없이 흐르는 것 같지만 우리는 어느 날 그 시간을 초월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있는 어떤 공간 속에서 여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문학적인 영감. 이 모든 것이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 시나 음악 가사와 같은 예술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주를 가득 채우는 ‘암흑 물질’과 빛의 파동과 굴절, 시공간의 법칙을 탐구하는 현대 물리학의 아이디어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아직도 현대 과학자들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독설을 극복해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역시 환원주의적인 생각,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찾고자 하는 파르메니데스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어제는 어제의 태양이,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뜬다.
태양은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