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대 그리스 철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식민지 시대의 다원론적 학파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밀레토스, 에페소스 등 이오니아 지방(오늘날 튀르키예 지역)의 철학자들이 탐구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arche)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탈레스는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만드로스는 ‘무한정자’,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했습니다. 또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세상의 근원으로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철학적 시도에 반기를 든 세력이 이른바 ‘다원론자들(Pluralists)’입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닌 여러 근원 요소들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지난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만물은 유전한다”라고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와 “아니다, 실재(實在)는 유일 불변이다”라고 봤던 파르메니데스의 사상을 조정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만물은 크게 보면 부단히 변화하지만, 작게 보면 변하지 않는 궁극적 원소(예컨대 일자와 같은)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세계를 다원론적으로 보았고 이들의 한층 다양화된 사고에 그리스의 철학적 토양은 더욱 성숙해지며, 세계의 근원에 대한 더 복잡하고 정교한 설명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엠페도클레스(Empedocles)와 사원소설
엠페도클레스(기원전 495-435년경)는 시칠리아의 아크라가스(Acragas) 출신으로 이곳에서 활동하다 정치적 갈등으로 추방된 이후에는 남이탈리아의 투리오이 등 여러 곳을 떠돌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앞서 피타고라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교조적인 측면을 두루 갖춘 인물로, 전설에 의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신으로 여기게끔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 오르페우스교에 이끌리기도 했고, 아크라가스에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으로서 정치와 학문을 결합하려 했습니다. 정치적 갈등으로 추방당한 이후에는 예언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과학적 지식을 수단으로 삼아 기적 또는 마법 등을 수행하며 자신의 신성을 증명하려 했고 이를 더욱 극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남몰래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합니다. 다소 기이한 그의 삶이지만 그의 사상은 꽤 두드러진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그는 이른바 다원론자들 중 최초의 사람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래서 일반적인 그리스 사상의 전통으로부터 좀더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세계의 근원이 하나가 아닌 네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네 가지 원소는 물, 불, 흙, 공기입니다. 그는 이 입자들을 뿌리(Rhizomata, Stoicheion)라고 불렀습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네 가지 원소 또는 요소, 성분(Elementum)이 영원불변하며, 이들의 결합과 분리를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화학의 분자식처럼 말입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결합과 분리를 이끄는 두 가지 우주적 힘을 제시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사랑(Love, Philia)이고 다른 하나는 다툼(Strife, Neikos)입니다. 사랑은 원소들을 결합시키는 힘이고, 다툼은 원소들을 분리시키는 힘입니다. 다만 여기에 목적은 없습니다. 단지 우연과 필연의 힘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 더 과학적인 성향을 띤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이었습니다. 그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면서 신화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물질적 원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그의 사원소설은 이후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중세까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와 누스(Nous)
아낙사고라스(기원전 500-428년경)는 클라조메나이(Clazomenae) 출신으로,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입니다. 그도 다원론적 견해를 이어나갔지만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는 엠페도클레스와 다른 견해를 지녔습니다.
아낙사고라스는 만물을 이루는 원소를 다만 물, 불, 흙, 공기의 네 가지로만 한정할 수 없고 그보다 더 궁극적인 원소 또는 입자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입자들은 수적으로는 무한하고 크기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는 이 입자들을 ‘종자(Seeds, Spermata)’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 무한히 작은 입자들이 그 각각의 성질을 보유한 채 혼합된 복합물이며, 그 복합물을 형성할 때 특정 종자가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면 그것이 가진 성질이 전체 복합물의 성질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종자 중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순수하고 섬세하고 미묘한 특별 종자가 있습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를 ‘누스(Nous, 정신)’라고 불렀습니다. 이런 종류의 종자는 다른 복합물 속에 섞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다스리는 힘이며 모든 운동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누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지적인 원리이자 바로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며, 물질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가진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러한 아낙사고라스의 사상은 후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받습니다.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와 원자론
‘웃는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370년경)는 트라키아의 아브데라(Abdera) 출신으로, 레우키포스(Leucippus)와 함께 원자론을 발전시킨 철학자입니다. 그들의 원자론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세계가 ‘원자(atomos,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와 ‘허공(void)’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원자는 크기와 모양이 다른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으며, 이들이 허공 속에서 운동하면서 부딪히고 결합하여 모든 사물이 만들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즉 빈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분할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는 엘레아 학파 이래로 고대와 중세의 일반적인 생각인 ‘분할할 수 없다’는 것과는 다른 데모크리토스만의 독특한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 원자들은 오직 크기와 형상, 즉 양적인 측면에서만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고 어떠한 성질도 원자 자체로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 엠페도클레스가 운동과 변화를 설명하면서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외적인 힘에 의지했던 것과는 달리 운동을 원자 고유한 힘이자 자체의 본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데모크리토스가 모든 현상을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원자들의 운동과 결합은 우연이 아닌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현대 과학의 결정론적 관점과 매우 유사합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의 영혼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혼은 가장 미세하고 둥근 형태의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이 인간의 생명과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원론적 학파들의 의의와 영향
이들 다원론적 학파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첫째, 이들은 세계의 근원을 단일한 원리가 아닌 복수의 원리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는 더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관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둘째, 이들의 이론은 점차 경험적 관찰과 논리적 추론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특히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현대 과학의 기초가 되는 유물론적 세계관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이들의 사상은 후대 철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엠페도클레스의 사원소설은 중세까지 자연철학의 기초가 되었고, 아낙사고라스의 누스 개념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고대 그리스의 다원론적 학파들은 철학사에서 또 과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 생명에서부터 우주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통찰은 현미경이 없어도, 망원경이 없어도 한없이 뻗어 나갔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고대 철학의 종합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등장하기 전, 그리스 식민지 시대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소피스트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진리를 향한 그들의 끝없는 탐구가 구체적인 현실 세계 속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변형되고 나타나는지 그 지적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