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고대 그리스에서 발전한 두 가지 중요한 쾌락주의(Hedonism, ἡδονισμός) 철학 사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퀴레네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는 모두 쾌락(pleasure, ἡδονή)을 인간 행복의 중심에 두었지만, 그 해석과 실천 방법에서는 중요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퀴레네 학파: 순간의 쾌락을 추구하는 적극적 쾌락주의
퀴레네 학파(Cyrenaic School, Κυρηναϊκή αἵρεσις)는 북아프리카 퀴레네(현 리비아의 샤하트) 출신인 아리스티푸스(Aristippus, Ἀρίστιππος, 기원전 435-356년경)에 의해 창시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아리스티푸스는 스승의 가르침에서 출발했지만, 스승의 가르침에 대해 플라톤과는 거리가 먼 해석을 내렸습니다. 바로 쾌락이 진정으로 유일한 선이라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회의를 품을 수 있지만 쾌락이 갖는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할 수 없다며, 행복은 쾌락의 총계라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티푸스는 적극적이고 감각적인 쾌락, 특히 신체적 쾌락을 최고선으로 여겼습니다. 이들에게 쾌락은 움직임과 자극에서 오는 긍정적 감각이었습니다. 또한 “과거는 가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직 현재만이 우리의 것이다”라는 아리스티푸스의 말처럼, 퀴레네 학파는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 지금 이 순간의 쾌락을 중요시했습니다.
또한 모든 쾌락은 질적으로 동일하며, 오직 강도(intensity)와 지속 시간(duration)으로만 구별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쾌락은 양적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흥미롭게도 퀴레네 학파는 무절제한 쾌락 추구를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쾌락을 소유하되, 쾌락에 소유되지 않는다”라는 아리스티푸스의 말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쾌락을 효과적으로 최대한 누리기 위해서는 쾌락에 민감해야 함은 물론이고 식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육체적 쾌락과 부와 명예와 사회적 명성 등은, 순간적인 덧없는 충동에 따라 행동하거나 자연 세계와 인간과의 인과 관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그는 식견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플라톤이 말한 지혜의 덕이나 초월적 가치에 대한 초월이 아닌, 개인적 득실을 따지는 세속적 이해타산을 뜻합니다.
퀴레네 학파의 이러한 가르침은 종종 단순한 향락주의로 오해받았지만, 그들은 쾌락을 현명하게 선택하고 통제하는 지혜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파는 소크라테스 이후 시대의 다른 철학 사조들, 특히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부상으로 점차 영향력을 잃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 지속적 평온을 추구하는 정교한 쾌락주의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년)는 불우한 초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기원전 341년 사모스 섬에서 태어난 그는 기원전 323년 라미아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하자 사모스 섬에서 추방당해 이오니아 본토의 콜로폰으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또한 알렉산더 대왕 사후 사모스에서 외지인 추방 정책이 시행되면서 난민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제자인 나우시파네스 문하에서 철학을 배웠지만 만족하지 못하였고 결국 독립하였습니다. 기원전 310년 에피쿠로스의 제자들이 아테네 근교에 그의 집과 정원을 마련해 주었는데, 에피쿠로스는 이곳에다 학원을 세우고 ‘정원(The Garden, Κῆπος)’이라 불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상으로부터의 절연이자 도피였는데, 이는 지혜라는 것은 이 세상과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절연해 있기 위해 자기의 정원 둘레에 높고 튼튼한 장벽을 쌓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자신의 불우한 초년 시절 느꼈던 세상, 선과는 거리가 먼 적의에 찬 세상에 대한 반영이자 평온을 찾는 방법이었습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의 선한 생활이란 외적 변동이나 내적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생활임을 강조했는데, 그래서 금욕적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일에도 관여하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난 에피쿠로스 철학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요? 에피쿠로스는 퀴레네 학파의 동적 쾌락보다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 ataraxia, 마음의 평온)’와 ‘아포니아(ἀπονία, aponia, 신체적 고통의 부재)’와 같은 정적 상태의 쾌락을 더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적극적 자극보다 잔잔하고 평온한 만족 상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육체적 쾌락이나 감각적 쾌락을 배척하였습니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죽음을 ‘감각의 소멸’로 보았으며 “죽음 이전에는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으므로 고통이 없고, 죽음 이후에는 감각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없다.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욕구에 대해 다음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구: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음식, 물, 쉼터 등)
- 자연적이지만 필수적이지 않은 욕구: 사치 식품, 좋은 옷 등
-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구: 부, 명예, 권력 등
에피쿠로스는 첫 번째 범주의 욕구만 만족시키는 검소한 삶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행복은 성취를 끌어올림으로써 얻는 행복의 증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적의에 찬 세상에서 끝없이 성취를 추구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반대로 욕망을 줄일 것을 주문합니다. 성취를 늘릴 수 없다면 욕망을 줄임으로써 행복의 크기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의 철학은 어딘지 모를 비애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은 결코 자기의 비애로 인해 격정에 휩쓸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앞서 살았던, 아리스티푸스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원자론자 데모크리토스 역시 인간의 욕망을 멸시했는데 그가 내세운 이유는 에피쿠로스와는 사뭇 다릅니다. 만물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장엄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자연을 찬미하는 데모크리토스에게 있어, 인간의 욕망 따위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즐거움에 넘쳐 사람들에게 자기 훈련을 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이처럼 쾌락주의는 원자론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후 로마 출신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저작을 남긴 루크레티우스 역시 원자론자입니다.
루크레티우스: 지속적 평온을 추구하는 정교한 쾌락주의
에피쿠로스 철학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99-55년경)는 가장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위대한 철학 서사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Περὶ φύσεως)는 에피쿠로스의 가르침을 아름다운 라틴 시로 표현하여, 로마 세계에 에피쿠로스 철학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그가 살던 당시 에피쿠로스 학파의 가르침은 권위를 갖춘 고전이 되었습니다. 또한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원자론은 이 쾌락설의 형이상학적 측면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 철학을 단순히 번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로마적 감성과 문학적 아름다움을 더해 창조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약 7,400행의 육각운율(hexameter)로 쓰인 그의 작품은 철학적 깊이와 시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고대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 첫머리에서 만물이 생성하는 것은 물질의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이거나, 아니면 예측할 수 없는 맹목적 우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루크레티우스는 원자론(atomism)을 상세히 설명하며, 모든 것이 원자(primordia, semina rerum)와 공허(void, inane)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원자론은 초자연적 설명 없이도 우주와 자연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다만 여기서 그가 데모크리토스의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온 부분이 있는데 바로 원자가 빗나간다는 생각입니다. 바로 ‘클리나멘(Clinamen)’이라는 개념으로 원자의 운동이 직선으로만 진행되지 않고 미세하게 빗겨나가는 ‘경로 이탈’ 또는 ‘편위’를 의미합니다.
좀 더 설명하자면, 만물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는 무게에 의해 수직으로 떨어지지만, 특정 시점에 미세하게 경로를 벗어나는 운동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탈 덕분에 원자들 간 충돌이 가능해지고, 만물의 형성과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클리나멘은 우연히 발생하는 현상으로, 세계가 예측 불가능하고 창조성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이는 자연과 생명 활동의 근본적인 동력으로 작용하며, 모든 새로운 운동과 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나아가 루크레티우스는 클리나멘을 통해 ‘자유 의지’를 설명했습니다. 바로 운명과도 같은 원자의 기계적인 운동 속에서 이러한 빗겨감이라는 우연이 있기에 인간이 운명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운명으로부터 벗어난 의지(fatis avolsa voluntas)”로 표현했습니다.
또 그는 종교적 미신(religio)이 인간에게 불필요한 공포를 심어준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탄투스는 그토록 큰 악행을 종교가 인류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다”라는 유명한 구절로 종교의 해악을 지적했습니다.
에피쿠로스처럼 루크레티우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극복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가르치며, 우리가 태어나기 전의 비존재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죽음 이후의 비존재 상태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에피쿠로스의 “죽음은 우리가 존재할 때는 오지 않고, 죽음이 왔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루크레티우스는 번개, 지진, 질병 등 당시 미신적으로 해석되던 현상들에 대해 자연적 설명을 제시했는데, 이는 근대 과학의 선구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아름다운 라틴 시로 표현한 에피쿠로스의 가르침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6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권은 원자론의 기본 원리와 우주의 무한성, 원자의 운동과 결합, 무한한 세계들, 영혼의 물질적 본성, 감각, 지각, 사고 과정, 사랑과 성욕, 우주, 지구, 생명, 인류 문명에서 기상현상, 질병에 이르기까지 에피쿠로스 철학의 다른 측면을 탐구합니다. 특히 제3권의 죽음에 관한 논의와 제5권의 인류 문명 발전에 관한 설명은 고대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철학적 성찰로 꼽힙니다.
데모크리토스,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적 원자론은 훗날 근대 과학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씨앗을 보여줍니다. 자연 현상을 그저 신비주의적인 현상으로 넘기지 않고 경험적 관찰과 과학적인 설명으로 이해하려 하였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생각을 윤리관과 인간의 삶, 우주론까지 확장시킨 놀라운 시도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바라본 세상이 질서 있으려면, 그리고 행복이 지속되려면 일시적인 질서와 불안정한 쾌락은 즉,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분별의 대상으로 여겼다는 점입니다. 문명은 우리가 스스로를 그들로부터 지켜내야 할 위험한 것들이므로 인간이 만약 문명의 유혹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적 세계에 은거하면서 고요하게 살아간다면,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원자론자들이 과학적 유물론을 펼치지만 그건 다만 세상을 더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려는 욕구의 발로일 뿐, 여전히 그들은 에피쿠로스적인 삶의 형태에 더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루크레티우스가 에피쿠로스 철학을 시적 언어로 표현한 것은, 철학이 단지 지적 탐구가 아니라 실제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그의 시적 표현은 버질, 오비디우스 등 로마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후대에는 스펜서, 테니슨, 월트 휘트먼 등의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