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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니코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 고대 금욕주의 철학의 가르침

by 미디옴 2025. 2. 18.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며,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내려주소서

 

이 유명한 문구를 본 적이 있다면 오늘 다룰 스토아 학파가 추구하는 삶의 지혜에 대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문구는 20세기 중반에 쓰여진 글로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의 기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살면서 느끼게 되는 불안과 걱정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는데요. 스토아 학파의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는 유명한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가르침은 불안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에게도 많은 영감과 지혜를 전하며 각종 책과 미디어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와 현대 시대가 어느 면에서는 닮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퀴니코스 학파는 기원전 4세기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가 창시한 철학 운동으로, 그의 유명한 제자 디오게네스(Diogenes)개를 닮은 삶을 실천하며 유명해졌습니다. 이들이 도시의 변두리에서 노숙하며 반체제적 삶을 추구했다면, 체제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학파도 있었습니다. 바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와 같은 인물을 배출한 스토아 학파입니다. 오늘은 겉으로는 마치 거지와 왕처럼 대조되는 이 퀴니코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철학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퀴니코스 학파의 기원과 개를 닮고 싶은철학

 

퀴니코스 학파(Cynics, 퀴니코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그리스어로 를 의미하는 κύων(kýōn)’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견유학파(犬儒學派)’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체제적인 삶을 추구했던 이들 학파는 세속적인 가치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현대 영어 단어 ‘cynical’(냉소적인)도 여기서 유래했습니다.

 

퀴니코스 학파 철학자들은 자연(physis, φύσις)에 따른 삶을 추구하며,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사회적 가치들을 관습(nomos, νόμος)’이라 규정하고 이를 철저히 거부했습니다. 마치 개가 그러하듯이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았으며 자연스러운 육체의 기능에 대해 아무런 수치심도, 위선을 느끼지도 았았습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행복은 자급자족(autarkeia, ατάρκεια)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퀴니코스 학파는 이어 다룰 스토아 학파의 사상을 발전시킴에 있어 선구적인 구실을 하였으며 철학적 배경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학파의 창시자로 알려진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 445-365)는 지난 포스트에서 다루었던 퀴레네 학파의 아리스티푸스처럼 소크라테스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아들인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다른 이들과는 판이했습니다. 그는 소크라테스의 선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해악도 닥쳐오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이 생각으로부터 자신의 제자들에게 인간은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적인 얽매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고, 재난의 공포,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타인의 감정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아가 관습은 인위적인 곳이고 나쁜 것이라고도 가르쳤는데 자연적 욕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 없이도 충족시킬 수 있으니, 자기 홀로 서서 오직 자기 자신에만 의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가 추구한 삶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최소한의 소유물로 살아가며 자연적 필요만을 충족하는 극단적인 검소함(askesis)을 추구하고, 사회적 규범과 예의를 의도적으로 위반(anaideia)하며, 권력자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진실을 말하는 태도(parrhesia).

 

안티스테네스에게는 오직 (arete, ἀρετή)만이 선이고 부덕만이 악이었습니다. 부덕은 부조리 자체인 사회의 관습에 순종할 때 생기고, 덕은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도전을 외치고, 이 세계 안의 정당한 위치에 확고하게 서서 완전히 자족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디오게네스, 금욕주의의 극한 실험

 

앞서 이야기했듯이 퀴니코스 철학의 핵심은 수치심 없음(anaideia, ἀναίδεια)’무관심(adiaphoria, ἀδιαφορία)’이라는 두 개념에 있습니다. 수치심 없음은 사회적 관습과 예의범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의 태도를 뜻합니다. 무관심은 외부 환경과 상황에 동요하지 않는 정신 상태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안티스테네스의 제자인 디오게네스(Diogenes of Sinope, 기원전 412-323)입니다. 그는 어떤 스승의 철학에 어떤 사상적인 기여를 한 것은 아니지만 워낙 특이한 기행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에 퀴니코스 학파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 살면서 최소한의 소유물로 생활했습니다. 이는 스스로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낮에 등불을 들고 아테네 거리를 돌아다니며 나는 정직한 사람을 찾고 있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이런 기행(奇行)은 단순한 괴짜 행동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위선과 인공적인 규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이었습니다. 퀴니코스 철학자들은 파레시아(parrhesia, παρρησία)’라는 솔직한 말하기, 즉 진실을 대담하게 말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그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디오게네스에 흥미를 느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를 만나기 위해 그의 거처를 방문했는데, 그는 머리 숙이기를 거부하고 황제를 멸시하는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하며 물러나게 했다고 합니다. “내게 그늘이 지지 않도록 비켜주시오.”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함께 있는 이미지
디오게네스를 만나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또한 크라테스(Crates of Thebes)와 그의 아내 히파르키아(Hipparchia)는 퀴니코스 삶의 방식을 함께 실천한 유명한 부부였습니다. 히파르키아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고, 거지 같은 삶을 사는 철학자 크라테스와 거리에서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등 당시 사회 규범에 도전했습니다.

 

퀴니코스 학파의 영향력은 그리스 시대를 넘어 로마 시대까지 이어졌으며, 특히 데메트리우스(Demetrius)와 오이노마우스(Oenomaus)와 같은 로마 시대의 퀴니코스 철학자들은 제국의 권력과 사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스토아 학파의 이성과 자연: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까지

 

지난 포스팅에서 다루었던 에피쿠로스 학파가 행복에 관한 공리주의적 사상을 정교화해 나갔다면, 스토아 학파는 엄격한 금욕주의를 기반으로 한 내면의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창시자인 키티움의 제논(Zeno of Citium, 기원전 334-262)은 고향을 잃은 유대인으로 동방의 셈족 계통 사람이었다고 전해지며 아티카 해안에서 조난을 당하여 아테네에 남아 스토아 학원을 창설했다고 합니다.

 

키티움의 제논 동상
라르나카 유럽 광장에 있는 키티움의 제논 동상 ❘ Geraki

 

스토아(Stoa)’라는 이름은 제논이 강의하던 채색된 주랑(Stoa Poikile)’에서 유래했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에피쿠로스의 학원인 정원이 세상으로부터의 절연이자 도피를 추구하며 장벽을 높게 쌓았던 것과는 정반대로 스토아 학원은 지금까지 당연시 되어 왔던 온갖 장벽과 테두리를 타파하고, 신념과 도덕을 지닌 그들의 공동체를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공동체는 세속의 공동체가 아닌 세계 공동체 즉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κοσμοπολίτης)’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로고스(Logos)를 공유하므로, 국적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하나의 세계 공동체(코스모폴리스, Cosmopolis)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시기별로 제논, 클레안테스(Cleanthes), 크리시푸스(Chrysippus)를 중심으로 기본 교리가 형성된 초기 스토아 시기, 파나이티오스(Panaetius)와 포시도니우스(Posidonius)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일부 받아들여 스토아 철학을 확장한 중기 스토아 시기, 그리고 로마 시대의 세네카(Seneca), 에픽테토스(Epictetus),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발전시킨 실천적 윤리학 중심의 후기 스토아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후기 스토아 시기에 훌륭한 저작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자유인이지만 본래 노예 출신이었던 에픽테토스,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구별이 없이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스토아 철학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스토아 철학의 중심에는 오직 이성적인 사람만이 선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로고스(Logos)’는 우주를 관통하는 이성적 원리로, 모든 존재와 사건을 결정짓는 신적인 원리입니다. 그래서 모든 감정을 도덕적 병이라고 여기며 터부시했습니다. 사사로운 욕망이나 감정, 두려움, 쾌락, 동요, 걱정, 동정심 따위를 물리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성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것입니다. 봉사 역시 우정의 발로나 자발적 애정과 같은 감정적 요소에 좌우되지 말고, 이성적 판단에 따른 엄격한 의무감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토아 학파는 우주조차도 이성에 의해 질서 지어진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았으며, 이를 코스모스(Cosmos, κόσμος)’라 불렀습니다. 즉 우주는 어떤 이성적 목적에 의해 형성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의 과정은 목적론적이고, 모든 사건들은 당연히 그렇게 되게 되어 있는 단일하고 예지적인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 역시 이성적 목적에 의해 정해진 길로 나아가는 중입니다. 영혼이 인간의 육체 속에 깃들어 있듯이, 물질적인 세계 역시 그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버려라

 

스토아 윤리학의 핵심은 아파테이아(apatheia, ἀπάθεια)’아타락시아(ataraxia, ἀταραξία)’입니다. 아파테이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상태를, 아타락시아는 마음의 평정을 의미합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사건들에 대해 무관심(아디아포라, adiaphora)해야 하며, 오직 우리의 내적 반응만이 우리의 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에픽테토스의 편람(Enchiridion)속 그의 말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충동과 욕망과 혐오는 자아에 속한 것이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있지만, 질병과 부와 명예는 자아에 속한 것이 아니어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그런데 통제할 수 있는 나쁜 일은 회피하면 그만이지만, 통제할 수 없는 질병과 죽음과 가난은 회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혐오를 거두고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을 버려야 한다.”

 

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Meditations)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주여, 그대의 목적에 맞는 것은 모두 나에게도 맞는다. () 우연이라고 보이는 것도 섭리 과정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자연이 가져오는 것과, 그리고 자연의 과정을 밟아 가는 것은 자연의 모든 부분에 대해서 이로운 것이다. () 춥든 덥든, 피곤하든 휴식을 취하든, 욕을 먹든 칭찬을 받든, 죽어 가든 일에 분망하든, 너의 의무를 다하여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동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 Jebulon

 

스토아 철학은 퀴니코스 철학에 비해 한층 성숙되고 발전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철학의 기틀 속에 스며들기도 했고 오늘날까지도 서양 문화 속에 유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학파에 비해서도 좀 더 신념에 찬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에피쿠로스 학파가 어떻게 하면 이 적의에 찬 세계의 고되고 힘겨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주로 가르친 데 비해, 스토아 철학은 설령 싸우다가 자신이 멸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세계의 악과 용감하게 싸울 것을 권했습니다.

 

개인적 고락을 염두에 두지 말고 자기 자신의 행복 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 만큼 중요한 어떤 우주적 목적을 위해, 그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의 의무를 다하여라.스토아 철학자들은 손실이 아무리 크더라도 개인적 목적을 희생하고 의무에 변함없이 충실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퀴니코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비교

 

퀴니코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모두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검소한 생활 방식과 자기 절제에 대한 강조는 두 학파 모두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스토아 학파의 창시자 제논은 퀴니코스 철학자 크라테스의 제자였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스토아 학파가 퀴니코스 학파의 일부 사상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더 체계적이고 완숙한 형태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줍니다.

 

두 학파는 (arete)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선한 사람이란 세상사와의 감정적 얽힘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학파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아래에 몇 가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사회적 태도: 퀴니코스 학파가 사회 규범을 완전히 거부했다면, 스토아 학파는 사회 내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내적 자유를 유지하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2. 이성의 역할: 퀴니코스 학파는 자연적 본능과 단순함에 더 가치를 두었고, 스토아 학파는 로고스(이성)를 우주의 근본 원리로 보았고, 인간의 이성을 중시했습니다.

3. 실천 방식: 퀴니코스 철학자들이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도발적인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더 원숙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습니다.

4. 우주관: 스토아 학파는 결정론적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일이 로고스에 의해 질서 지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퀴니코스 학파는 그런 체계적인 우주관을 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퀴니코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후대에 영향을 미쳤는데, 퀴니코스 학파는 비판적 정신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들의 급진적 금욕주의는 초기 기독교 수도원 운동에 영향을 주었으며, 근대에 이르러서는 니체와 같은 철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현대의 사회 비판과 반소비주의 운동에서도 퀴니코스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 스토아 학파는 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배 계층의 주요 철학이 되었으며, 교부 철학과 중세 기독교 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신스토아주의(Neo-Stoicism)가 발전했고, 근대에는 스피노자칸트 같은 철학자들의 사상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에는 심리치료, 자기계발, 리더십 분야에서 스토아 철학의 원리가 널리 적용되고 있습니다.

 

두 학파 모두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외부 환경이 아닌 내적 상태에 달려 있다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했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 있는 통찰로 남아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에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 사는 현대인에게도 스토아 학파의 세계시민주의적 사상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리고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삶의 고난과 고통을 어떻게 마주했을 때, 내면의 다스림을 통해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많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20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어쩌면 당시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닮은 구석이 많은 까닭에, 우리는 여전히 스토아 철학의 지혜가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늘이 무너져도 그대의 의무를 다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