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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의 등대

by 미디옴 2025. 2. 14.

서양 철학사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전후로 해서 두 시기로 나뉩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시기로 지금까지 우리가 다루었던 고대 그리스(Hellenic) 철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사후의 시기로 헬레니즘(Hellenistic) 철학입니다. 두 단어가 유사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그리스어 hellenismos의 본래 뜻이 ‘그리스어를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한 해 앞서 세상을 떠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죽음(기원전 323) 이후 약 300년간 이어진 이 시기는 아테네에서 절정을 이룬 그리스 문명의 시대와는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기 전에, 헬레니즘 시대가 어떤 시기였는지 간략히 알아보겠습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배경과 특징

 

헬레니즘 시대는 대체로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죽음인 기원전 323년부터 로마가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국(Ptolemaic Kingdom)을 정복한 기원전 30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킵니다(다만 철학사적으로는 이어지는 로마 시대까지 포함하여 이후 300년간의 기간까지 포함합니다). 이 시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여파로 아테네와 도시 국가들이 쇠락하였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제국이 분열하면서 점차 로마의 힘이 뻗어나가는 시기였습니다. 비록 그리스 시대는 군사적 정치적으로 패배하였지만 문화와 사상적으로는 여전히 로마 시대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리스 문화가 지중해 전역과 중동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다양한 문화적 교류가 일어났던 시기입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는 그림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르치는 아리스토텔레스

 

이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폴리스(polis, 도시국가) 중심의 그리스 세계관에서 벗어나 보다 개인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cosmopolitan)인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제국의 붕괴,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그리스인들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와 사상을 접하게 되었지만, 그리스 문화가 가지고 있던 진리 탐구자의 용맹한 기백을 잃어버린 채 성취의 즐거움보다도 오히려 어딘가 모르게 수동적이고 염세적인 사상, 불행의 방지를 희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철학적 사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헬레니즘 철학의 주요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고난으로부터의 피난 내지는 보다 나은 왕국으로의 탈출

2. 개인의 행복(eudaimonia)과 평온(ataraxia)에 대한 탐구, 구원 갈망

3. 자연계에 관한 관심이 쇠퇴하고 도덕적 내지 종교적 문제들에 관심

4. ‘진리 탐구에서 삶의 기술(Ars Vivendi)’로의 전환

 

이제 헬레니즘 시대의 주요 철학 학파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쾌락주의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는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아테네의 정원학파(The Garden)’를 설립한 그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는 고통의 부재(aponia)와 마음의 평온, 아타락시아(ataraxia)를 통한 행복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흔히 쾌락주의(hedonism)로 오해받지만, 사실 그가 추구한 쾌락은 단순한 감각적 즐거움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평온 상태였습니다. 그는 쾌락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습니다:

 

1.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욕구: 음식, , 쉼터와 같은 기본적 필요

2. 자연적이지만 불필수적인 욕구: 사치품, 맛있는 음식 등

3. 자연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욕구: 명예, 권력, 부 등

 

에피쿠로스는 첫 번째 종류의 욕구만 충족시키는 단순한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의 유명한 네 가지 처방(tetrapharmakos)’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신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 죽음은 걱정할 것이 없다.

- 좋은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다.

- 괴로운 것은 쉽게 견딜 수 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또한 원자론(atomism)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모든 것이 원자(atomos,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것)로 구성되어 있다는 이론입니다. 그들은 영혼도 물질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죽음과 함께 소멸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유물론적 세계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스토아학파와 이성적 삶

 

스토아학파는 키티움의 제논(Zeno of Citium, 기원전 334-262)에 의해 아테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은 포이킬레 스토아(Poikile Stoa, 채색된 주랑)’라는 아테네의 공공 건물에서 유래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뉩니다.

 

1. 논리학(Logic): 지식의 기준과 판단의 방법에 관한 연구

2. 물리학(Physics): 우주의 본질과 구조에 관한 연구

3. 윤리학(Ethics):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연구

 

스토아학파의 핵심 가르침은 로고스(Logos, 이성 또는 우주적 질서)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주가 신의 이성(divine reason)에 의해 지배된다고 믿었으며, 인간의 이성은 이 우주적 이성의 일부라고 생각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윤리학은 아파테이아(apatheia, 정념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덕(arete, virtue)을 강조했습니다:

 

- 지혜(phronesis, wisdom): 무엇이 좋고 나쁜지 아는 능력

- 용기(andreia, courage): 두려움을 극복하는 능력

- 절제(sophrosyne, temperance): 욕망을 통제하는 능력

- 정의(dikaiosyne, justice): 각자에게 마땅한 것을 주는 능력

 

스토아학파의 유명한 대표자로는 세네카(Seneca), 에픽테토스(Epictetus), 그리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가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자신의 판단, 욕망, 행동)과 통제할 수 없는 것(외부 사건, 타인의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스토아학파는 또한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모든 인간이 로고스를 공유하므로, 국적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의 세계 공동체의 시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회의주의와 판단유보

 

헬레니즘 시대의 회의주의(Skepticism)는 피론(Pyrrho of Elis, 기원전 360-270년경)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후에 아카데메이아(Academia)의 아르케실라오스(Arcesilaus)와 카르네아데스(Carneades)에 의해 발전되었습니다.

 

회의주의의 핵심 가르침은 에포케(epochē, 판단유보)입니다. 피론주의 회의주의자들은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모든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회의주의의 주요 논증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1. 동등한 반대 논증(isostheneia): 모든 주장에 대해 동등하게 강력한 반대 주장이 있다.

2. 무한 퇴행(infinite regress): 지식의 정당화는 끝없는 연쇄로 이어진다.

3. 순환 논증(circular reasoning): 지식의 정당화는 종종 순환적이다.

 

회의주의자들은 판단유보가 아타락시아(ataraxia, 마음의 평온)로 이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확실함을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불안과 동요를 가져온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회의주의는 완전한 무지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단주의(dogmatism)에 대한 경계였습니다. 세스투스 엠피리쿠스(Sextus Empiricus)와 같은 후기 회의주의자들은 현상(phenomena)과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의 본질에 대한 단정적 주장을 거부했습니다.

 

석양을 바라보는 뒷모습 사진

 

신플라톤주의와 일자(一者)의 철학

 

비록 헬레니즘 후기와 로마 시대에 걸쳐 발전했지만,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는 헬레니즘 철학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학파는 플로티누스(Plotinus, 204-270 CE)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그의 저작은 제자 포르피리우스(Porphyry)에 의해 엔네아데스(Enneads, 아홉 모음)’로 편집되었습니다.

 

신플라톤주의의 핵심 개념은 일자(The One)입니다. 일자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언어나 사유로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초월적 원리입니다. 이른바 유출설(emanation theory)을 주창한 플로티누스의 체계에서, 실재는 다음과 같은 위계적 구조를 가집니다.

 

1. 일자(The One): 모든 것의 궁극적 근원, 절대적 통일성

2. 누스(Nous, Mind): 일자에서 유출된 첫 번째 실재, 이데아의 영역

3. 영혼(Psyche, Soul): 누스에서 유출된 두 번째 실재, 생명의 원리

4. 물질 세계(Material World): 영혼에서 유출된 가장 낮은 실재

 

신플라톤주의자들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를 일자와의 신비적 합일(mystical union)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그들은 덕의 실천(practice of virtues), 이성적 사고(rational thinking), 그리고 명상(contemplation)을 통한 정신적 상승(spiritual ascent)을 강조했습니다.

 

플로티누스의 가르침은 후대의 포르피리우스(Porphyry), 이암블리쿠스(Iamblichus), 프로클루스(Proclus) 등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초기 기독교 신학과 중세 철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동상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상, 그리스 테살로니키 ❘ Nikolai Karaneschev

 

헬레니즘 철학의 유산

 

헬레니즘 철학은 서양 사상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 개인주의와 세계시민주의의 조합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개인의 내적 평화와 전 인류의 형제애를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현대의 인권과 세계시민 개념의 선구적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둘째, 실천적 지혜의 강조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은 윤리적인 문제와 현실 삶에서의 지혜를 중시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실용주의(pragmatism)와 응용윤리학(applied ethics)에 영향을 주었습니다셋째, 종교와 철학의 융합을 들 수 있습니다. 특히 신플라톤주의는 철학적 사유와 신비적 경험을 결합했으며, 이는 후대의 종교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철학의 치유적 역할(Therapeutic Philosophy) 강조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철학을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의 철학상담(philosophical counseling)과 인지행동치료(cognitive-behavioral therapy)의 선구적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헬레니즘 철학의 많은 개념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관련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토아학파의 감정 통제 기술은 현대 심리학에서 재발견되고 있으며, 에피쿠로스의 단순한 삶에 대한 가르침은 현대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공명합니다. 회의주의의 비판적 사고방식은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 등 과학적 방법론의 기초가 되었으며, 신플라톤주의의 세계관은 중세 기독교 철학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헬레니즘 철학은 단순히 역사적 관심사가 아니라, 오늘날의 철학적, 윤리적, 심리적 논의에 계속해서 기여하고 있는 살아있는 전통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퀴레네,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주의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