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23 고대와 중세 철학의 과도기에 펼쳐진 치열한 그리스도론 논쟁 서양사에서 중세는 일반적으로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부터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특히 4~6세기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부터 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시기는 중세를 대표하는 스콜라 철학을 이해하기에 앞서, 당시의 역사적 사실들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유럽 사회에 확산하는 과정에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하였지만, 여전히 그 위치는 불안했습니다. 교리 자체도 아리우스파와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 등과 같은 여러 분파들로 분열되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고, 로마 황제도 정치적 득실 관계에 따라 전통 다신교 신앙을 부활시키려 하거나 전쟁에서 로마에게 승리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던 유피테르(Jupiter, 주피터, .. 2025. 3. 12. 아우구스티누스의 믿음과 이해의 철학: 진리를 향한 조화로운 길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성 아우구스티누스 혹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시기 로마에서 활동한 여러 교부철학자 중 한 명이지만 철학사적으로 보았을 때 서양 사상의 한 정점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그는 현재 알제리 수크아라스 지역인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Thagaste)에서 태어났으며, 로마의 관원으로 이교도 출신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인 어머니 모니카 사이에서 성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살았던 시기는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기독교가 점차 주류 종교로 자리잡아가는 과도기였습니다. 특히 410년 로마의 함락은 그의 사상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으며, 이에 대한 응답으로 그의 대표작 『신국론.. 2025. 3. 8. 아리우스파와의 이단 논쟁으로 본격화된 초기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 맺기 지난 포스트에서는 박해받는 소수 종교에서 로마 제국의 공인된 종교가 되기까지, 기독교가 거쳐온 험난한 과정을 살펴보며 교회 이념의 형성 과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부터 전개된 교회와 국가 간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탐구해 보겠습니다. 특히 4세기 아리우스파의 이단 논쟁을 중심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 성 아타나시우스, 성 암브로시우스와 같은 주요 인물들이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재정의해 온 과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지, 종교와 국가권력은 협력과 견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춰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기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다음 포스트에서 알아볼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The City of God)』에 이르러 교회-국가 관계가 철학.. 2025. 2. 28. 교회 이념의 형성 과정, 노바티우스설과 도나투스설의 도전 초기 가톨릭 교회 이념의 형성 과정에서 내부적 도전을 제공한 두 가지 중요한 분파가 바로 노바티우스설(Novatianism)과 도나투스설(Donatism)입니다. 이 두 운동은 표면적으로는 교회의 순수성과 성직자의 도덕적 자격에 관한 논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회의 본질, 성례전의 효력,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가능성에 관한 깊은 신학적 질문들을 제기함으로서 중세 철학의 새로운 합리성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노바티우스설(Novatianism): 교회의 순수성과 용서의 한계 노바티우스(Novatianus, 200-258년경)는 로마의 신학자이자 사제로,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250년) 이후 교회 내에서 발생한 ‘배교자(lapsi, 背敎者)’ 문제에 관해 엄격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제국.. 2025. 2. 27.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신학과 철학을 바라보는 시선 초기 기독교 교부들과 가톨릭 교회의 형성 로마 시대 수많은 종교 집단 중 하나에 불과했던 기독교가 세력을 키우고 체계화되는 데는 사도 바울 이후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기까지 약 4세기에 걸친 가톨릭 교회의 형성기의 험난했던 과정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끌던 초기 기독교 집단은 규율도 조직의 통일성도 보편적으로 인정된 실천의 규준도 없이 단순한 종교적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체계적인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바로 교부(敎父, Church Fathers)들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이르러 교회는 어느 정도 공식화된 제도하에서 정식화된 신조와 윤리적 이상을 갖춘 조직체가 되었는데, 교부란 이러한 초기 .. 2025. 2. 26. 사도 바울, 서양 철학의 숨겨진 기둥이 남긴 위대한 유산 사상가로서의 사도 바울 사도 바울(Apostle Paul, 약 5-64년경)은 초기 기독교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종종 기독교 신학의 진정한 창시자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바울을 단순히 종교적 인물로만 이해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 서구 철학에 미친 깊은 영향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주요 저자이자 이방인의 사도로 히브리적 전통과 헬레니즘적 사고 방식을 독특하게 결합하여,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 복합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남부 타르수스(Tarsus)에서 태어나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입니다. 히브리어를 사용한 그의 유대식 이름은 ‘사울(Saul, שָׁאוּל)’이며, 라틴어 버전인 Paulus(파울루스)에서 기원한 ‘바울(Pa.. 2025. 2. 25. 이전 1 2 3 4 다음